전세사기 피해자 14편 : 재판장, 판사, 불송치 결정


오늘은 참으로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오늘 제가 이토록 비참한 기분을 무릅쓰고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같은 처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물론 법원에는 훌륭한 판사님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말을 하는 분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은 제 사건의 첫 번째 변론 기일, 그 서슬 퍼런 재판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실제 법원에서 나에게 온 변론기일 통지서 예시
실제 법원에서 본인(저)에게 온 변론기일통지서 입니다.
막상 등기로 받고 보니 많이 떨렸답니다.

1 . 뛰는 가슴을 안고 들어선 재판장

   평범한 사람에게 재판장에 간다는 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일입니다.   '내가 판사 앞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똑바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상대방이 또 어떤 거짓말과 헛소리로 내 마음에 대못을 박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침부터 목을 죄어왔습니다.

가슴을 졸이며 도착한 법원, 재판 시간보다 30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했습니다.   법정 밖 멀리 떨어진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차분히 가져온 메모장을 복습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습니다.   똑바로 알아듣고 변론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법정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으니, 마침내 판사가 제 사건번호와 원고, 피고의 이름을 호명했습니다. 저는 원고 좌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으며 본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판사의 첫 마디, 저는 그 순간 제 귀를 의심했고, 이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습니다. 판사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사건,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 났다면서요?"

2. 소장의 첫 문장조차 읽지 않은 판사

판사의 짧은 한마디에 제가 그토록 분노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저는 이번 "전세금 반환 등 청구의 소" 소장을 작성할 때, 가장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명확히 기재했습니다. 

     " 본 사건은 경찰의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에 대해 원고가 즉각 이의신청을 하였으며, 이의신청 3일 만에 검찰로 공식 송치되었습니다.  (사건번호 : 000000번)"

말 그대로 판사가 제 소장을 단 '한 번'이라도, 아니 첫 줄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소송이 검찰로 송치되어 진행 중인 엄연한 형사상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판사는 제가 피땀 흘려 쓴 소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피고 측 변호사가 제출한 준비서면만 대충 읽고 재판장에 들어왔다는 뜻이었습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쓴 준비서면에는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이 났다"라는 내용만 강조되어 있었습니다. 재판 이틀 전에 등기로 온 서면이었기에 저 역시 읽어보아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소장의 첫 마디가 '검찰 송치'였기에, 설마 재판을 주재하는 판사가 눈앞에서 그런 황당한 소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3. "불송치 결정은 현재 검찰 송치 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제가 화를 꾹 누르고 차분하게, 하지만 또박또박 뱉은 이 한마디에 재판장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그제야 판사는 당황한 기색을 비추며 피고 측 변호사를 쓱 쳐다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무언의 눈빛이었습니다. 판사의 시선을 받은 피고 측 변호사는 어버버 하며 대답하였습니다.

"네? 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순간 저는 눈앞에서 삼류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가 막혀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그것도 민사재판의 첫 기일에 판사와 피고 측 변호사 모두가 원고인 제가 제출한 소장을 단 한 줄도 읽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변호사도 참 대단합니다. 의뢰인에게 수백만 원의 수임료를 받았을 텐데, 상대방 소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재판장에 나오는 그 배짱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판사는 허둥지둥 무언가를 지우고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며 쐐기를 박듯 다시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이 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 2주 전에 결정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즉각 이의신청을 진행했고, 제출 3일 만에 검찰로 송치되어 현재 사건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제야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 아 이의신청을 하셨군요."

판사는 멋쩍은 듯 상황을 정리하기 바빴습니다.

" 이 사건은 현재 검찰 송치 진행 중에 있으니, 형사 사건 결론이 나면 그때 다시 재판을 재개하겠습니다."

4. 재판장을 나오며 느낀 지독한 허탈함

그렇게 제 첫 번째 재판은 허무하게 끝이 났습니다. 법원을 걸어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지독한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심정으로, 억울함을 풀러 갔다가 오히려 상처만 안고 법원 문을 나선 분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을 것입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에게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시간입니다. 밤잠을 설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며 준비한 서류들이 정작 재판장에서는 '읽히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무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의를 구하러 간 곳에서 시스템의 태만함을 마주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께 꼭 드리는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 어떤 소송이든, 확실한 증거가 있는 한 결국에는 반드시 이깁니다."

판사가 서류를 안 읽는다면 재판장에서 제 목소리로 직접 깨우쳐 주면 됩니다. 상대 변호사가 허술하게 나온다면 그 빈틈을 찌르면 됩니다. 법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게 공정하거나 꼼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나 홀로 소송을 준비하시는 분들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서류와 증거들 빈틈없이 꼼꼼하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법원 시스템이 제발 개선되어, 앞으로 소송을 하는 분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물로 쓴 소장의 가치를 알아주는 재판장을 만나는 것, 그것이 소송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현재 검찰 조사 중이라 결과는 나오는 데로 올리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전세사기당한 집에서 이사를 가기 위해 진행한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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